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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에서 욕망을 마주하는 방법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깡은 인간의 욕망에 대해 완벽한 기의를 갖지 못하고 끝없이 의미를 지연시키는 텅 빈 연쇄고리라고 말한다. 그의 이러한 언급은 실재하는 것처럼 보인 욕망의 대상이 실제로는 허구이며, 그러기에 완벽한 기의를 갖지 못한 기표로서 존재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우리에게 있어 욕망이란 개념은 과연 그러한가? 번지르르한 껍데기만을 지닌 채 우리 주변에서 실재하고 있지는 않는가?
 
김병호의 작업은 이러한 허구적인 인간의 욕망, 그리고 그것의 판타지를 실재적으로 재현한다. 그는 차가운 금속을 조립하고 말쑥하게 마감하여 하나의 형상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을 인간의 욕망이 증식되는 과정으로 대치시킨다. 그의 작업은 마치 다양한 인간의 욕망이 서로 결합되고 증폭되어 새로운 욕망의 덩어리를 만들어내는 과정과 유사하다. 욕망이란, 그 자체로는 어떠한 구체적 형태를 지니지 않는 대상을 향한 갈망의 덩어리이다. 따라서, 그것이 다소의 부정적 의미를 내포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감정의 응집물로서 그 자체로 순수하다. 욕망은 기본적으로 인간을 살아가게 하는 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스스로 주체가 되어 인간을 지배하기도 한다. 이러한 욕망의 면면들은 김병호의 작업에서 서로 다른 유형으로 나타난다.
 
그가 제시하는 첫 번째 유형은 시리즈의 제목에서 암시하고 있듯(Silent Pollen), 욕망의 소리 없는 증식 과정을 재현하는 것이다. 수십 개의 알루미늄 관으로 구성된 일련의 작업들은 고요하게 발생하여 서로 결합되고 증식되는 욕망의 판타지를 가시화한다. 그는 이러한 과정들을 ‘꽃’이라는 상징적 지표로서 나타내고 있는데, 아름다움의 상징으로서의 꽃은 그의 작업에서 욕망이 하나의 대상으로서 실재하는 순간을 상징한다. 욕망 그 자체가 대상 없이 생성될 수 없다는 점을 떠올려보면, 이러한 작가의 의도는 다분히 의도적이다. 그러나 작가는 꽃의 수분 과정을 은유적으로 차용할 뿐만 아니라, 욕망이라는 추상적 개념마저도 물성화된 차가운 표면 속으로 끌어들여 작품의 균형감을 획득한다.
 
이 작품에서 또한 주목할 지점은 이러한 욕망의 증식 과정이 미디어의 개입으로 현시된다는 점이다. 마치 욕망의 증식 과정이 고요하게 진행되는 듯 보이지만, 이면에는 무수한 요인들을 동인으로 삼는 것처럼, 설치된 작품은 관람객들의 작은 소리를 흡수하여 임의의 사운드로 확대시킨다. 그러나 이러한 미디어의 개입은 철저하게 숨겨져 있다. 알루미늄으로 만들어진 수 많은 꽃가루 관 속의 작은 입 · 출력장치들이 자신도 모르게 증폭되어 버리는 스스로의 욕망의 순간들을 재현하는 셈이다. 이러한 미디어의 절제된 사용은 그의 전반적인 작품에 개입된 미디어의 위치를 상기시킨다. 그는 마치 창조주가 흙으로 인간을 빚고, 숨으로 정신을 불어넣듯이99%의 에너지로 작품의 형태를 만들고, 이후1%의 개입으로 미디어를 활용한다. 이러한 그의 개념은 현재의 미디어가 지닌 과도한 상호작용성에 의한 관객의 이탈을 방지한다. 작품에서 나타난 소극적인 미디어의 개입에도 불구하고 그를 미디어아티스트라고 부른다면, 이러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김병호 작업의 두 번째 유형은 첫 번째 유형과는 다르게 욕망의 실체를 과감하게 드러낸다(Assembling for Eternity). 첫 번째 유형의 작업에서 보여준 욕망의 증식 구조는 이제 더 이상 소리 없는 과정으로만 머물지 않고, 조심스럽게 재련한 욕망이라는 추상적 개념은 극도로 물성화된 덩어리로서 나타난다. 앞서 기술한 라깡의 언급을 비웃기라도 하듯, 그가 제시하는 욕망의 덩어리는 인간의 심연 저편에 존재하던 욕망의 실체를 바로 몸에서 꺼낸 듯, 탐욕스럽고 끈적끈적하다. 여기서 그의 작업에서 일관성 있게 나타나는 물성에 대한 태도를 살펴보자. 우레탄 고무를 입힌 강철에 페인트를 금방이라도 퍼부은 것처럼, 매끈하면서도 뚝뚝 떨이지는 안료를 그대로 드러낸 작품들은 그가 작품을 보는 관람객들에게 시각적인 전달을 넘어 촉각적이고도 청각적인 공감각적 감상을 의도하고 있음을 알 수 있게 만든다. 아마도 첫 번째 유형에서 보여준 차갑고 절제된 표면이 정제된 물성을 기반으로 한 주제의 이식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었다면, 두 번째 유형은 미디어를 집어삼킨 욕망의 덩어리가 그 자체로서 공감각적 감상을 유발시키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리라.
 
   앞서 언급한 이러한 두 가지 작품의 유형은 그 변주의 단계로 접어들게 된다. 2008년 작인는 이전의 작업과는 다르게 관객들의 개입의 여지를 제공하는 작품이다. 전작들에서 욕망이 스스로 증식되어 순환하는 구조와 덩어리로 응집되는 순간들이 가시화 되었다면, 이 작품에서 작가는 관객들이 지닌 저마다의 욕망의 판타지를 체험하게 만든다. 거대한 생식기처럼 보이는 기하학적인 작품의 외형이 그 자체로 주제 의식을 드러내는 듯 보이지만, 마치 산업 디자인 제품처럼 깔끔하게 마감되어 있는 각각의 부분적 요소들이 사운드를 변환시키고, 생산시키는 일종의 사운드 모듈레이터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에 이 작품은 또 다른 의미로서 읽힐 수 있다. 작가는 관객의 참여에 의해 부분적 요소들에서 발생하는 소리의 진동으로서 서로 조립되고 증식되는 욕망의 순간을 변주한다.
 
   현재 그는 지금까지 작업에서 보여 준 몇 가지의 원칙들을 공간과 결합시키고 있다. 마치 욕망이라는 존재가 대상을 전이하며 스스로를 확장시키는 것처럼, 그는 자신의 작품을 다른 시 · 공간에 위치시켜 새로운 맥락을 창조하고자 노력한다. 그는 형태를 만들 때,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형상을 상상한다고 말한다. 비록, 그 모티브나 사고의 근본적인 시작점을 추적해보면 개인의 경험과 인식으로 귀결될 수 있겠지만, 필자는 이러한 시도들이 기능 속에 함몰된 형태의 자율성 및 상상력을 해방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또한, 그의 작품에서 구조화 된 욕망의 판타지처럼, 상상력에 의한 형상의 논리적 구조화가 우리들에게 스스로의 지각과 반성, 그리고 근본적인 토대로서의 현실을 인식시키고 있음을 감지한다. 이제 그의 작업에서 빠져 나와 우리의 현실을 반추해보자. 그것이 더러는 추하고 어지러운 현실일지라도 말이다.

유원준 / 앨리스온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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